같은 하루였는데 시장이 두 개였다. 코스피는 장중 8,127.99까지 밀렸다가 가까스로 8,394.65(-0.20%)로 버텼다. 코스닥은 +8.13%. 사이드카까지 발동됐다. 반도체에서 빠진 돈이 바이오와 2차전지로 옮겨갔다는 게 이날 시장의 해석이었다. 그 해석이 맞는 건지, 오늘만 보고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7조 원을 넘었다. 삼성전자 -4.86%, 323,000원. SK하이닉스 -1.68%, 2,628,000원. 반도체 양대 대장주가 함께 밀리면서 지수가 장중 8,127.99까지 끌려 내려갔다.
만약 이날 개인과 기관의 저가 매수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8,100선을 밑도는 마감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0.20%로 끝난 건, 솔직히 말하면 낙폭 방어 측면에서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7조라는 숫자가 워낙 크다 보니 희석되는 느낌이 들지만.
코스닥 920.57. 전 거래일 대비 +69.20포인트(+8.13%). 3거래일 만에 900선이 뚫렸다. 바이오와 2차전지 종목들에 매수세가 집중됐고, 장중 선물 급등으로 매수 사이드카까지 발동됐다.
반도체에서 이탈한 자금이 여기로 왔다는 해석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 바이오와 2차전지가 오늘 하루 만에 이만큼 오를 새로운 이유가 생겼냐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만약 반도체 대형주가 오늘처럼 약하지 않았다면, 코스닥이 이렇게 달렸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의 코스닥 급등은 자체 동력보다 코스피의 약세가 만들어준 공간이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반도체주가 밀린 배경엔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하나는 글로벌 스마트 연산 시장의 거품론이다. 일부 빅테크들이 내년 설비 투자 계획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HBM(초고대역폭 메모리) 수요에 물음표가 붙었다. 다른 하나는 정부 주도 반도체 프로젝트의 비용 부담 우려다.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아직 확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주 마이크론이 500억 달러 가이던스를 내놨을 때 이 우려들은 일단 뒤로 밀렸었다. 그게 1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 어느 쪽 내러티브가 시장을 잡느냐 — 그 답은 다음 빅테크 실적 시즌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보다 13.2원 오른 1,545.2원에 마감했다. 이미 높은 수준이었는데 더 올라갔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주식을 살 때마다 환차손이 쌓인다. 그게 지금 이 환율이 만들어내는 압박이다.
오늘 7조 원 넘는 외국인 순매도는 반도체 우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환율 부담이 그 밑에 깔려 있다. 반사실적으로 생각해보면 — 만약 환율이 1,480원대였다면 오늘 외국인이 이만큼 팔았을까? 아마 규모가 달랐을 것이다. 반도체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환율이 1,540원대를 유지하는 한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복귀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이게 지금 국내 증시의 가장 조용한 문제다.
빅테크들의 투자 계획 수정 여부다. 설비 투자를 줄이겠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면 반도체주는 오늘보다 더 크게 밀릴 수 있다. 만약 그 발표가 없다면? 오늘의 외국인 이탈 일부는 과잉 반응으로 판명될 수 있고, 되돌림 흐름이 들어올 수 있다. 어느 쪽인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둘째는 환율이다. 1,540원대 아래로 꺾이는지를 봐야 한다. 환율이 내려오지 않으면 외국인이 돌아오기 어렵다. 셋째는 코스닥 반등의 속재료다. 바이오·2차전지의 오늘 상승이 실적 기반인지 순수 수급인지가 다음 주 연속성을 결정할 것이다. 수급만이었다면 다시 빠진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예상 밖으로 나오면 다음 주 분위기는 지금과 달라진다. 틀릴 수도 있다.
오늘이 2분기 마지막 거래일이었다는 걸 빼면 이날 수급을 절반밖에 설명 못 한다. 반기 말에 기관들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분기 성적표를 좋게 꾸미는 '윈도우 드레싱'. 자산 배분 비중을 목표에 맞추는 기계적 리밸런싱. 오늘은 그 둘이 겹쳤다.
국민연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상반기 코스피가 장중 9,000선까지 오르면서 포트폴리오 내 국내 주식 비중이 30%를 넘어버렸다. 5월에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올리고 허용 한도도 28.8%까지 넓혔는데, 그래도 실제 비중이 넘쳤다. 리밸런싱 유예 조치가 6월 말로 끝나면서 기계적 매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만약 코스피가 상반기에 이만큼 오르지 않았다면 — 오늘의 수급 압력도 이 정도로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올랐기 때문에 팔아야 했고, 팔았기 때문에 밀렸다. 간단한 논리인데 시장에서는 늘 뒤늦게 실감한다. 국민연금의 잠재 매물로 시장이 지목하는 규모는 60조 원 안팎이다. 이 숫자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7월에도 기계적 매도가 조금씩 나올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오늘 코스닥의 +8.13%를 바이오·2차전지 업황 개선으로 읽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리밸런싱 과정에서 기관들은 많이 오른 자산을 팔고 덜 오른 자산을 산다. 반도체 대형주 비중을 줄이고 코스닥 성장주·금융·지주 쪽으로 자금을 옮기는 흐름. 오늘 코스닥으로 자금이 쏠린 건 이 흐름 위에 올라탄 결과였다.
증권가에선 이번 6월 말 변동성을 '분기 말 수급 이벤트'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리밸런싱이 끝나면 7월 초 새 자금이 들어오며 안정을 찾는다는 논리다. 반복돼 온 패턴이긴 하다. 그런데 — 이번에도 그게 맞아떨어질까? 외국인이 하루에 7조를 팔아치운 날을 '계절적 이벤트'라는 말로 편하게 정리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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